작가란무엇인가(에코 오스터)
『작가란 무엇인가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파리 리뷰 인터뷰, 권승혁 김진아 옮김 / 다른 / 2014
이론화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 움베르트 에코(라일라 아잠 잔가네)
그렇게도 많은 작품을 쓰신 비결은 무엇인가?
: 저는 틈새를 이용할 수 있다고 항상 말합니다. 원자와 원자 사이, 그리고 전자와 전자 사이에는 많은 공간이 있어요. 우리가 우주의 질료 사이사이에 있는 공간을 없애고 축소시킨다면 전체 우주를 공만 하게 압축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삶은 틈새로 가득 차 있어요. (...) 저는 화장실에서도 기차에서도 일을 할 수 있어요. 수영하는 동안에도 많은 것을 생산해냅니다. (p. 44)
지식인이라는 용어를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 지식인이라는 말이 머리로만 일하고 손으로는 일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면, 은행 직원이 지식인이고 미켈란젤로는 지식인이 아닐 겁니다. 그리고 오늘날은 컴퓨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지식인이지요. 그래서 지식인이라는 말이 어떤 사람의 직업이나 사회 계층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 창조적으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식인이랍니다. (...) 비판적인 창조성–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것을 비판하거나 그 일을 할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지식인의 역할의 유일한 징표입니다. (p. 52)
엄청난 기억은 엄청난 짐일 수도 있지요. 예를 들어 당신이 좋아하는 보르헤스의 작품인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 나오는 푸네스의 기억처럼 말이지요.
: 저는 완강한 무관심이라는 개념을 좋아해요. 완강한 무관심을 계발하려면 어떤 분야의 지식에 자신을 한정해야 하지요. (...) 모든 걸 다 배우려 들지 않도록 스스로를 억제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배울 수 없지요. 문화란 이런 의미에서 망각하는 법을 배우는 법에 대한 거예요. (...) 뭘 배우고 기억하길 원하는지 구별하는 것은 인식론적인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합니다. (p. 54)
지식의 형태로서의 일화 – 폴 오스터(마이클 우드)
『고독의 발명』에는 제가 좋아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지식의 형태로서의 일화’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은 결코 선언이나 진술이나 설명이라는 형식으로는 실현되지 않습니다. 이 아이디어가 『빨간 공책』에 들어 있는 이야기들을 엮어내는 기본 원리로 보이더군요.
: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실의 역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며,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증거를 모으는 것이며, 가능한 한 충실하게 그것을 기록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 물론 소설은 허구입니다. 따라서 (그 용어의 엄밀한 의미에서 보자면) 소설은 거짓을 말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소설가는 거짓을 통해 세상에 관한 진실을 말하려고 애를 씁니다. (...) 세상에서 무엇을 경험하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 즉 있는 그대로의 진실 말입니다. (p. 165)
‘전미 청취자 사연 프로젝트’가 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셨나요?
: 소위 보통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보통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지요. 우리 모두는 강렬한 내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격렬한 열정으로 불타고 있고, 여러 가지로 기억할 만한 경험을 겪으며 살고 있다는 것 말이에요. (p. 170)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 무엇에 대해 쓰고 있는지 얼마나 많이 의식하시나요? 계획을 세워서 그대로 작업하시거나 미리 플롯을 모두 생각해놓으시나요?
: 제가 쓴 책은 모두 제 머릿속에서 ‘윙윙거리는 소리’라고 부르는 것과 함께 시작합니다. 일종의 음악, 리듬이나 어조라고 할까요. 제가 소설을 쓸 때 들이는 대부분의 노력은 그 윙윙거리는 소리나 리듬에 충실하려고 애쓰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직관적인 일이에요. 이성적으로 설명하거나 판단할 수는 없지만, 틀린 음을 쳤을 때 즉각적으로 알 수 있는 것처럼 정확한 음을 쳤을 때도 대개는 확실히 알 수 있지요. (p. 179)
‘한 번에 한 단락씩’이라는 구절로 돌아가 볼까요?
: 글쓰기를 할 때 가장 자연스런 단위는 단락이라고 여겨져요. 행은 시의 단위이고, 제게 있어선 단락이 산문에서 그것과 똑같은 기능을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상당히 만족할 때까지 계속해서 단락을 쓰고 또 씁니다. 그 단락이 적절한 모양, 적절한 균형, 적절한 음악을 얻게 될 때까지 계속해서 고쳐 씁니다. 그래서 그 단락이 투명해지고, 쉽게 쓰인 것 같고, 더 이상 ‘지어진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 때까지 고쳐 쓰지요.(p. 180)
(2016년 11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