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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모으기/문장들 : 2016~2018

『한국, 남자 – 귀남이부터 군무새까지 그 곤란함의 사회사』(최태섭 / 은행나무 / 2018 )

by 맑은 물 2019. 2. 1.

 

 

한국 남자는 그 시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이상적인 상을 현실로 구현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실패를 언제나 다른 사회적 약자들 특히나 여성의 탓으로 돌려왔다. 사회적으로는 폭력과 억압의 주체이고, 내적으로는 실패와 좌절에 파묻혀 있다.

 

남성성은 젠더 관계 속의 장소이자 그 장소에서 남녀가 관여하는 실천이고, 그런 실천이 육체적 경험, 인격, 문화에서 만들어내는 효과다.” (코넬)

 

남한 단독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정권은 가부장제를 강화하고 성별 분업 체계를 확고히 하는 다양한 제도들을 도입하려 했다. 이중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민법에 속하는 가족법으로서, 일본이 식민지 시기 도입한 가 제도를 전통으로 재해석하여 남성 호주를 중심으로 하는 부계 승계를 법적인 질서로 승인하는 호주제를 만들었다.

호주제의 도입과 더불어서 중요한 분기점은 1949년 제정된 병역법을 통해 시행된 징병제도였다.

 

상이군인은 대한민국이라는 신생 국가가 만들어낸 남성성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남성들은 국가 폭력, 전쟁, 빈곤에 희생당했다. 그리고 국가는 이에 대해 무능하거나 무책임한 모습만을 보였다.

 

군사정권기에 남성성은 이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국가 건설을 위해 목숨을 바쳐 헌신하는 남성을 호출했다. 그러나 그 양상은 이전과 달랐다. 하나는 학교-군대-공장(회사)으로 이어지는 남성성 배양의 구조를 확립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 이해가 남성성의 핵심에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남자 만들기의 핵심은 한국의 병영 국가화, 그리고 그것의 근간이 되는 강력한 징병제도의 정착이었다. (...) 과도한 징병은 오히려 다양한 사회문제의 원인이 되었다. 병역 자원이 넘쳐나는 반면 20대 남성의 노동력이 급감한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국가는 병역 특례 제도를 만들고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않는 저임금 노동자를 기업에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군인들 역시 군에서 진행하는 각종 공사나 노역에 동원되어 사실상의 무임금 노동자로 착취당했다.

 

베트남 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군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은 80여 건에 피해자가 9000여 명에 달한다. (...) 전쟁 시기 한국군의 성매매나 강간 등으로 태어난 5000에서 3만으로 추산되는 아이들(일명 라이따이한’)이 베트남의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사회학자 구해근은 한국의 산업 노동력 향상에 기여했던 것으로 공교육, 군대, 가족을 꼽았다.

 

2000년대 한국 사회 남성성의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자기 피해자화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런 흐름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것은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에 격렬하게 일어났던 군 가산점 논쟁이었다. 군필자가 7급 이하 공무원 시험에 응시할 때 5퍼센트의 가산점을 주도록 되어 있었던 군 가산점 제도에 대한 위헌 심판을 헌법 재판소에 청구한다. 헌법재판소는 19991223일 재판관 전원 일치로 해당 제도가 군대에 갈 수 없는 여성과 장애인 등의 평등권과 공무담임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위헌 판결을 내렸다. (...)

당시 경제 위기를 겪고 있었던 한국 사회에서 공무원은 거의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원래대로라면 기업으로 갔을 이들도 기업 공채 규모가 줄어들자 공무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결과 경쟁률은 높아지고 공무원 시험에 만점자가 속출했다. 여기에서 갑자기 군 가산점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5퍼센트 가산점으로 당락이 갈렸다. 원래 공무원은 차별로 인해 일반 기업에 취업하고 근무하는 것이 어렵던 여성에게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자리에 가까웠다. 그런데 군 가산점이 확대되는 것은 이미 정리 해고의 집중적인 표적이 된 여성들을 노동시장에서 추방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도덕적 분노보다도 더 내밀한 사정은 병역 거부라는 예외를 인정하게 된다면 자신이 무기력하게 끌려갔다 왔다라는 사실이 더욱 더 부각된다는 점이다. 군대를 개선하는 것을 가장 방해하는 세력은 여대생도, 여성 단체도 아니라 바로 예비역이다.

 

결국 이 모든 소람의 근원에는 군 복무 그 자체의 경험이 있다. 이것이 사후에 이득이 되거나 말거나와 상관없이 군 복무의 경험은 한국 남자들이 가장 크고 넓게 공유하는 일종의 집단적 트라우마다. 그 이유는 한국의 군 복무가 전인격적 박탈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군대는 그냥 몸으로 때우기만 하면 되는경험이 아니다. 정기적으로 이어지는 정신교육은 특정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역사와 사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군대 내에서 유일하게 옳은 지식을 주입하는 일이다.

 

여기에 더해서 군 생활을 환장할 경험으로 만드는 중요한 요소는 모든 것이 지휘관들의 결정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힌다는 점이다. 일상 속의 군은 지휘관의 결정에 따라 무체계적이고 자의적인 방식으로 운용되기 일쑤다.

 

위험은 이런 군 경험에 방점을 찍는 궁극적인 요소다. 2000년 이후 한국의 군대에서는 매년 최대 182(2000)에서 최소 75(2017)에 이르는 군인들이 사망했다. 그리고 변함없는 군 내 사망 요인의 1위는 자살이다.

 

징병제도와 군인들의 처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대부분의 군인과 예비역들이 인지하는 사실이다. 군 가산점에 대한 집착은 실질적인 이득보다는 자신의 고생을 보상하는 체계가 무엇이든 존재해야 한다는 집념의 산물에 좀 더 가깝다.

 

문제의 해법은 결국 군의 더 철저한 민주화이고, 인권을 부수적이고 어색한 개념으로 생각하는 병영 문화를 뜯어고치는 것이다. (...) 한국 남자들이 빠져 있는 이 집단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해결하지 못하면, 한국의 남성성은 지금의 남자 문제를 그러안은 채 고착되어 있을 것이다. 군의 개선도, 사회의 진보도 어려움은 물론이다.

 

여성 혐오의 연대기 1 : 된장녀의 탄생

 

꼴페미는 군 가산점 논쟁을 벌이던 남성들이 군 가산점 폐지 찬성을 주장했던 여성들에게 붙인 이름이다. 자신의 남성성을 지나치게 과시하는 남성들에게 붙이던 꼴마초라는 단어를 뒤집은 것으로 이들은 남녀평등을 추구하는 진정한 페미니즘과는 다르게 여성 상위를 주장하는 변질된 페미니즘을 신봉하는 이들이라고 주중되었다. (...) 그 구분은 자의적이었다. 오직 여성들만이 꼴페미가 될 수 있었다. (논쟁에 참여한 남성들 제외)

 

된장은 일부 커뮤니티들에서 한국인에 대한 자조적인 비하를 할 때 사용되곤 했던 단어다. 이 단어는 인종주의적인 질서를 냉소적으로 체념하는 한편, 한국인의 행동을 비난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된장녀는 그런 숙명을 거부하려는 한국 여성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들이 외국인과 자신들을 차별한다는 피해의식으로부터 나타난 단어다. (...) 그 이면에는 헛된 저항을 포기하고 인종 질서를 받아들여, ‘된장남들과 짝을 맺어야 한다는 음침한 소망이 깃들어 있었다.

 

이들이 한국 여성에게 품고 있는 것은 질투에 가까운 감정이다. 인종 차별에 더한 성차별적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새롭게 열린 글로벌한 세계에서 한국 남자는 경제력과 가부장적 권력을 점차 잃어가는 가운데, 한국 여성들은 그 가능성의 공간에 상대적으로 쉽게진입할 수 있다. 이 사실은 한국 남성들을 패닉에 빠트린다. 그래서 이들은 여자들을 단속하기 위해 발목을 부여잡고 된장을 묻히려고 하는 것이며, 백인 여성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시위의 일환으로 일없이 소환되고 있는 것이다.

 

된장녀는 분노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어리석음을 간파당하고, 개과천선시켜야 하는 존재다. (...) 된장녀는 남자들이 원하는 특정한 종류의 여자를 만들어내기 위한 반전상이자 도구다. 된장녀의 반대에는 남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적절하게 외모를 가꿀 줄 알고, 너무 높지 않은 기준의 대상과 연애를 하며, 상대방을 정서적 성적으로 케어하는(기를 살려주는!) 여자가 있다. 이 기준을 벗어나는 여자들에게 너 된장녀지?”라고 물어보는 것으로 여성들이 행동을 교정하고 자기 검열을 강화하도록 만든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청년 세대 남성들이 이전 세대의 남성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으나 청년 세대 남성들보다 더 열악한 곳에 청년 세대 여성들이 있다는 것 역시 사회적 사실이다.

단순히 사회경제적인 지위에서 여성이 우위에 있기 때문에 질시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들의 성이 너무 비싸다라는 뜻에 가깝다. 비싸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 그렇다. ‘막장이자 잉여인 우리(남자)들에 비해 비싸고, 내가 그것을 얻기에도 너무 비싸다는 뜻이다.

이 불만은 여성을 오로지 섹스로 치환하는 비인간화의 논리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여성혐오적 언설은 자기 비하의 정서로부터 정당성을 얻는다. 우리는 이미 막장이고 잉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비하하는 것쯤은 괜찮다는 것이다. 어차피 인간은 모두 몸뚱이로 가장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것들에 의해 좌우되는 존재라는 냉소주의적인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다. 이러한 위악 僞惡의 유행은 사회 변화에 영향을 받음과 동시에 온라인 문화가 가지고 있는 자체적인 문법들에 영향을 받는다. 청년 세대의 사회경제적 삶의 조건들이 악화되어옴과 더불어 온라인에서의 부족 전쟁과 주목 경쟁이 심화되면서, 성찰적이고 예의바른 언어보다는 자극적이고 모욕적인 언어가 점점 온라인 공간을 장악해온 것이다.

그런데 이 자기 비하는 스스로에게도 비인간화의 논리를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매우 방어적이다. 가령 잉여는 내가 스스로에게 자조적인 의미로 사용할 때는 괜찮지만, 타인이 진심으로 나를 잉여라고 부르는 것은 안 된다. (...) 그러므로 이 위악은 윤리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실패로 끝난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비하하는 척하는 전전긍긍하는 자아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멸칭과 냉소주의의 문법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너도 어차피 똑같다의 의미는 인간성의 한계나 바닥을 향하고 있다기 보다는, 다분히 자신의 지식, 상황, 욕망이라는 한계들 속에서 만들어진다. (...) 이들의 냉소적 세계관은 동물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들로부터 도출된 것이고, 이것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고민 없이 인간의 본능이나 영점으로 설정된다. (...)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이고 무엇보다도 남성의 관점에서만 만들어진 세계관 속에서 여성 혐오는 순환을 반복하며 독성을 더해나가게 된다.

 

 

 

여성 혐오의 연대기 2 : 김치녀부터 메갈까지

 

그 동안 여성 혐오의 중요한 근거가 되어왔던 남자에게 의존하는 여자의 상에 정확하게 반하는 메시지인 “Girls do not need a Prince”에 대해 남자들이 분노했다는 점이다. 가능한 독해는 두 가지다. 하나는 (...) 이들이 원하는 의존은 무거운 부담이 되지는 않지만 존재감을 인정해주는 것이라는 복잡한 형식을 띠고 있다. (...) 더 정확하게는 자신에게 정말로 경제적/사회적 의존을 하길 바란다기보다는, 적은 노력과 투자로 의존에 뒤따르는 신뢰와 존경만을 보내주길 바라는 유아적이고 이기적인 방식을 원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 그저 메갈 혹은 여성이 하는 모든 행동과 말을 비난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그리고 진실은 이 두 개가 섞인 어딘가 쯤에 있을 것이다.

 

권김현영은 인터넷의 초창기인 2000년대 초반부터 인터넷 유저를 끌어 모으는 콘텐츠로서 여성이 자리매김되었다고 말한다. 즉 인터넷에서 여성이 유저가 아니라 콘텐츠(주로 성적인 의미의)이자 소비자(꾸미고, 살림하고, 애 키우는 여자)로서만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장 큰 이유로 그는 플레이밍, 즉 악플이나 사이버 공격이 남성 유저들에 의해 반복됨으로써 여성들이 이탈해갔던 상황을 꼽는다. (...) 실제로 온라인은 여자가 없는 공간으로 상정되며, 있어도 없어야 하는 공간이다. 그러한 동성성 同性性을 바탕으로 다양한 행위들, 예컨대 포르노의 공유나, 거친 말투나 욕설에 대해 잠정적으로 양해를 구하고, 내부인으로서의 의식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 이 동성성의 문제는 특히 남성 청()년들의 놀이 문화에서 극단화된다.

 

복수의 연구들은 컴퓨터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가진 익명성에 오는 공적 자아의식의 감소와 탈사회성의 증대, 개인의 다양한 심리적/사회적 특성에 의한 공격성의 표출 등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또한 타인이나 주변 사람(준거집단)들이 이런 행위를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도 있으며, 여성보다는 남성, 언어폭력에 대한 용인도가 높은 집단/개인, 예절에 순응적이지 않고 심리적 긴장 상태를 오랫동안 지속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 익명성에 따른 개인화가 아니라 익명성과 집단성이 결합되는 경우에 이런 행동이 더 많이 유발된다는 연구도 존재한다.

 

한국 청년 남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놀이 문화들은 여성 혐오를 하나의 주요한 정서로서 공유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대로, 실제로 그 영역에 여성이 많지 않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동성성을 유지하는 것이 그들에게 중요한 원리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 그 이유는 그 안에서 여성이란 성적 대상이자 비난할 수 있는 타자로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들만의 영토에서 여성 혐오는 순환을 거듭하고, 동시에 강화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기존의 성별 질서로부터 벗어난 성적 주체를 세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진정한 남자, 진정한 여자, 진정한 성 소수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이 의미를 상실하고 아무런 구분점이 되지 않는 상태를 향해야 한다. 이는 모두 천편일률적인 무성적 존재가 되자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각자의 성적 지향과 성적 실천을 존중하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며, 폭력이나 강제가 아닌 한에서는 재단하거나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어떻게 누군가를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한 사람의 주체로, 또 타인과 연대하고 돌보는 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2018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