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풀어놓기/예전에...7 4월 봄날의 영구차 그는 전화를 받았다. 핸드폰의 액정화면에는 익숙한 제자의 번호가 떴다. 8년 전 학교를 졸업한 아이. 활발하고 명석하고 밝은 아이였다. 학교를 사랑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친구들을 몰고 학교에 와서 난장판인 체육창고를 말끔히 정리해 놓고 가곤 했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았으나 그 아이의 밝은 목소리 대신 굵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자의 남자친구라고 했다. 제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선생님에게는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전화를 드렸다고 했다. 내일이 발인인데 제자가 초등학교 시절을 가장 행복해했으니 떠나는 길에 학교에 들렀다 가게 해주고 싶다고. 지금 계시는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을지 여쭤본다고. 4월 봄 햇살을 눈부셨다. 이틀 동안 내린 비에 먼지가 씻겨 내려가 공기는 바삭했.. 2019. 1. 31. 농사 본격 시작 상추 뜯어먹고 고추나 따먹다가, 장마철에 잡초 올라오고 땡볕에 땅바닥에 마르면 텃밭 쪽은 쳐다도 안 보던 나였다. 혼자 텃밭을 할 때는 그렇게 해도 됐다. 아이들과 함께 1년 동안 수업시간에 농사를 짓기로 한 지금은 안 된다. 부담이 되고 긴장이 됐다. 텃밭에 거름을 뿌리고 이랑을 세우기로 한 전 날에 농기구와 유기농 비료를 사러 농협으로 갔다. 필요한 농기구의 이름도 쓰임새도 수량도 파악하기 어려워 교장샘의 도움으로 겨우 목록을 정했다. 복합비료가 화학비료라는 것도 몰라서 복합비료 사겠다가 했다가 “그러면 유기농 농사가 아닌데?” 말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유기농 농산물 사서 먹을 줄만 알았지 농산물이 마트에 오는 과정에 대해서는 놀랄 만큼 무지했다. 농협에 가서 교사라는 걸 밝히고 4학년 아이들과 .. 2019. 1. 31. 타인의 노동 몸을 움직여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와서 박힌다. 이른 아침이라 한적한 대학로 야외 공연장에서 남성 노동자들이 나무 데크에 물을 뿌리고 의자를 손으로 닦고 있었다. 고급 호텔 화장실에서 눈을 마주치자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던 여성 노동자는 내가 세면대에서 손을 닦자마자 세면대 주변에 떨어진 물기를 손걸레로 바로 닦는다. 호텔 중앙 로비에는 깔끔한 정장을 입고 지나가는 모든 고객에게 미소를 머금고 고개와 등을 숙여 인사하는 노동자가 있다. 지하 주차장에서는 굳은 표정으로 지나가는 차가 찍어놓은 빗물을 닦고 쓰레기를 치우는 노동자들이 있다. 내가 일상에서 벗어나 쉬는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노동의 공간이 되는 당연한 원리를 확인한다. 내가 쾌적하고 깨끗한 공간을 누리려는 욕망이 누군가를 .. 2019. 1. 31. 돌봄 노동에 대하여 남편이 농구를 하다 오른쪽 종아리 근육과 인대가 파열되었다. 반 깁스를 했고 양쪽 목발을 짚어야 걸을 수 있으니 운전은 당연히 못하고 혼자서 출퇴근을 할 수 없으니 당연히 학교도 쉬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일요일에 일주일 진단서를 끊었고 교감에서 바로 연락을 취했다. 시간강사를 구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신호였다. 남편의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교감의 목소리는 웃음 속에 난감함과 당혹스러움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남편의 몸에 대한 걱정이나 염려를 먼저 보여주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지만 교감에게는 수업 보결 업무처리가 우선이었다. 남편의 빈자리를 대신할 교사가 없으며 (교과전담 교사가 중등자격증만 가진 강사이므로 담임교사의 수업을 대신할 수 없단다), 교감이나 교장 본인이 보결을 담당할 수도 있다는 생.. 2019. 1. 31.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