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농구를 하다 오른쪽 종아리 근육과 인대가 파열되었다. 반 깁스를 했고 양쪽 목발을 짚어야 걸을 수 있으니 운전은 당연히 못하고 혼자서 출퇴근을 할 수 없으니 당연히 학교도 쉬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일요일에 일주일 진단서를 끊었고 교감에서 바로 연락을 취했다. 시간강사를 구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신호였다. 남편의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교감의 목소리는 웃음 속에 난감함과 당혹스러움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남편의 몸에 대한 걱정이나 염려를 먼저 보여주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지만 교감에게는 수업 보결 업무처리가 우선이었다. 남편의 빈자리를 대신할 교사가 없으며 (교과전담 교사가 중등자격증만 가진 강사이므로 담임교사의 수업을 대신할 수 없단다), 교감이나 교장 본인이 보결을 담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볼 수도 없었고, 시간강사를 구하려는 생각도 없었다. (시간강사 수당 때문인 건가?) 통화 내내 난감하고 당혹스러운 웃음만 남기다가 일단 내일 하루는 쉬시고 그 다음 날부터는 자기라도 출퇴근 때 남편을 태워다 줄 테니 학교에 나오란다. 이런 어이없는 통화를 들으며 화가 났다. 교사는 다쳐도 안 되고 아파도 안 되는가? 더욱더 어이없는 일은 그 날 밤에 교감이 전화해서 미안하지만 내일도 학교에 나와 달라고 했다는 것. 단 하루의 병가도 허용할 수 없다는 단호함, 또는 오만함이 느껴졌다.
월요일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는데도 남편 학교에 출근 시간에 얼추 맞춰 들어갔다. 교문에 나와 있던 교감의 역시 당혹스러운 웃음에 경직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로 인사하고 운동장으로 들어갔다. 뒷좌석에서 남편이 내리는 동안 차를 잠시 멈추고 운전석에서부터 튀어나와 뒷좌석으로 달려가서 남편의 목발을 꺼내어 주었다. 바로 차에 타서 운전대를 잡는데 어느 샌가 다가온 교감이 다시 인사를 건넨다. “아유, 학교에 늦지 않으셨어요? 내일부터는 우리가 할게요.” 학교에 늦지 않았냐고? 지금이 몇 시니? 내일부터는 우리가 한다고? 아무 죄도 없는 우리 남편이 너님 차고 타고 벌 받는 학생처럼 실려 다닐 일 있니? 순간 화가 더 솟구쳤다.
이틀 연속으로 출퇴근 시간에 남편을 태우고 다녔다. 그나마 내가 다니는 학교의 분위기가 유연해서 지각이나 조퇴를 이해해주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제 퇴근 때 만난 남편은 짜증이 가득차서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도서실에 아이들을 데려가서 자유롭게 책을 읽게 했는데 도서실 도우며 학부모가 아이들을 줄 세워서 입장시켜야 한다는 둥 잔소리를 하지 않나, 교실 청소를 하러 들어온 여사님이 옆 교실은 깨끗한데 이 교실은 왜 이렇게 더럽냐며 아이들 교육 좀 제대로 시키라고 하지 않나, 아이들 공책에 착한 일을 일주일에 몇 번했나 까지 확인해줘야 한다고 하지 않나 소소한 잔소리들에 짜증이 난다고 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다리까지 욱신거리는데 쉬지도 못하고 학교에 나와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잔소리나 듣고 있으니 정말 정 떨어진다고 했다.
이번 주부터 가정 방문 상담 기간이라 저녁 시간에 내가 없기 때문에 남편은 혼자 가람이를 돌보기도 해야 했다. 가람이라도 아빠 마음을 잘 맞춰주면 좋으련만 아빠가 공부를 가르칠 때는 감도 못 잡고 동문서답을 해대지를 않나, 늦은 시간까지 잠자리에 들지 않고 왔다갔다 반복하지를 않나. 급기야는 우리 부부가 피곤에 떨어 곯아떨어진 시각에 갑자기 안방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와서는 느닷없이 “나 온수매트 뺐어!”하고 큰 소리로 반복해서 말하질 않나. 잠에 취해서 나는 늘어져있고 자다가 벌떡 일어난 남편이 가람이 방으로 갔는데 잠시 후에 “이게 뭐야!”하는 큰 소리가 났다. 그제야 놀라서 가보니 가람이가 자기 방바닥에 온수매트를 팽개쳐 놓고 있었다. 남편은 하루 동안의 짜증과 피로, 가람이의 어이없는 행동에 화가 나 있었다. 온수매트를 다시 올려놓으려다 무심코 오른 다리에 힘을 주는 바람에 다친 근육에 통증을 느끼며 침대에 주저앉아 낮은 비명을 질렀다. 결국 남편은 가람이에게 소리쳤고 가람이는 눈을 부릅뜨며 이를 악물더니 방문을 잠궈 버렸다. 잠이 깬 남편은 새벽 3시가 다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다 피로에 지친 표정으로 침대로 돌아왔다. 나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새벽 4시에 일어나 책을 읽었다. 책.. 그래 이렇게 힘들 때 위로를 주는 책 말이다.
책을 읽으며 마음이 순해졌다. 퇴근 후에 가정방문 가기로 했던 엄마에게 가정방문 일정을 바꿨으면 좋겠다고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7시 30분에 도착하도록 예약 전송 문자를 보냈다. (새벽 6시에 문자보내면 너무 하니까.) 보내놓고 나니 마음이 편해진다. 남편에게 가람이에게 돌봄이 필요한 시간. 남편과 가람이가 편안해야 집안 공기가 편안하다. 내가 편안하다는 뜻이다. 이 김에 남편과 함께 일찍 한의원에 가서 나도 침을 맞으며 한숨 푹 자야겠다. 남편을 돌보고 나를 돌보기. 돌보는 마음과 돌보는 노동이 무조건 소모적이거나 나를 희생하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자주 기억해야 한다.
(2018년 4월 4일 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