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 속성을 전혀 모르는 무언가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메논) (17)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마 예견할 수 없는 것의 역할을 인정하는 기술, 불쑥불쑥 놀라움을 접하면서도 균형을 유지하는 기술, 우연과 협동하는 기술, 세상에는 본질적인 미스터리가 존재하기에 우리의 예상과 계획과 통제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임을 깨닫는 기술일 것이다. 예견할 수 없는 것을 예측하는 것, 이것은 아마 삶이 우리에게 가장 많이 요구하는 역설적 작동이기도 할 것이다. (18~19)
“도시에서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은 흥미로운 면이라고는 없는 따분한 일이다. 그 일에 필요한 것은 무지뿐, 그 이상 아무것도 필요없다.” (...) “그러나 숲에서 길을 잃을 때처럼 도시에서 길을 잃는 것은 상당히 다른 훈련이 필요하다.” (벤야민) 길을 잃는 것, 그것은 관능적인 투항이고, 자신의 품에서 자신을 잃는 것이고, 세상사를 잊는 것이고, 지금 곁에 있는 것에만 완벽하게 몰입한 나머지 더 멀리 있는 것들은 희미해지는 것이다. 벤야민의 말을 빌리자면 길을 잃는 것은 온전히 현재에 존재하는 것이고, 온전히 현재에 존재하는 것은 불확실성과 미스터리에 머무를 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우리는 그냥 길을 잃었다 get lost는 표현 대신 자신을 잃었다 lose oneself는 표현을 쓰는데, 이 표현에는 이 일이 의식적 선택이라는 사실, 스스로 택한 투항이라는 사실, 지리를 매개로 하여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정신 상태라는 사실이 함축되어 있다.
우리가 그 속성을 전혀 모르는 무엇이야말로 종종 우리가 발견해야만 하는 것이고, 그것을 찾는 일은 길을 잃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19~20)
“생존의 열쇠는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26)
“탐험가들은 늘 길을 잃었습니다. (...) 아마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술은 자신이 충분히 생존할 수 있고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낙관적 태도였을 겁니다.” (...) 길 잃은 상태는 주로 정신적 상태다. 오지에서 더듬거리는 물리적 길 잃기 뿐 아니라 모든 형이상학적이고 은유적인 길 잃기들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길을 잃을 것인가다. 길을 전혀 잃지 않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고, 길 잃는 방법을 모르는 것은 파국으로 이어지는 길이므로, 발견하는 삶은 둘 사이 미지의 땅 어딘가에 있다. (31)
잃는다는 것에는 사실 전혀 다른 두 의미가 있다. 사물을 잃는 것은 낯익은 것들이 차츰 사라지는 일이지만, 길을 잃는 것은 낯선 것들이 새로 나타나는 일이다. (...) 그 때는 세상이 우리가 알던 것보다 더 커진 셈이다. (42)
우리가 영영 차지할 수 없는 푸름의 아름다움을 그럼에도 소유할 수 있는 것처럼, 갈망도 그런 식으로 소유할 수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그런 갈망의 어떤 측면은 꼭 먼 곳의 푸름과 같아서, 우리가 그것을 획득하거나 그것에 도달하더라도 결코 충족되지 않으며 그저 위치만 바뀌기 때문이다. (53)
폐허란 무엇일까? 폐허란 인간이 지은 구조물이 방치되어 자연으로 돌아간 것이다. 도시 속 폐허의 유혹 중 하나가 바로 그런 야생의 유혹이다. 폐허는 게시와 위험을 둘 다 간직한 미지의 것들을 잔뜩 품고 있는 듯한 장소다. 도시는 인간이 만들지만 자연이 쇠퇴시킨다. (127)
도시는 인간의 의식을 본떠 지어진다. 그것은 계산하고, 관리하고, 생산할 줄 아는 네트워크다. 한편 폐허는 도시의 무의식, 기억, 미지, 어둠, 잃어버린 땅이 되고 그럼으로써 도시에 진정한 생명을 부여한다. 폐허 덕분에 도시는 계획의 틀을 벗어나서 생명처럼 복잡한 것, 탐사될 수는 있지만 지도화될 수는 없을 듯한 것으로 바뀐다. (...) 도시는 폐허로 인해 죽음을 얻는다. 하지만 이 죽음은 꽃에게 양분을 주는 시체처럼 생명을 길러내는 죽음이다. 도시의 폐허는 도시 경제의 바깥으로 밀려난 장소이고, 그러니 역시 도시의 일상적인 생산과 소비 바깥으로 밀려난 예술이 제 집으로 삼기에 이상적인 장소인지도 모른다. (128)
가끔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를 겪는 것, 장애물을 만나는 것도 괜찮습니다. 삶에는 신비로운 면이 있고 불확실한 요소가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도 괜찮습니다. 우리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 도움을 구하는 행위는 아주 너그러운 행위인데 왜냐하면 남들이 우리를 돕게 하고 우리가 남들의 도움을 받게 하기 때문이라는 사실, 이런 걸 깨닫는 것도 괜찮습니다. 가끔은 우리가 도움을 요청합니다. 가끔은 우리가 도움을 제공합니다. 그럴 때, 이 적대적인 세상은 아주 다른 곳으로 변합니다. 도움이 받아들여지고 주어지는 세상이 됩니다. 그런 세상에서는 자신이 엮어낸 세상, 설득력 있고 확고한 세상이 덜 다급하고 덜 절박한 것이 됩니다. 너그러운 세상, 도움이 오가는 세상에서는 자신이 엮어낸 세상을 굳이 단호하게 고집할 필요가 없습니다. (277)
(2019년 1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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