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 때는 공동체와 나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그렇게 얻은 침착함을 가지고 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생과 이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는 거다. 화전민이나 프리라이더가 아니라 조용히 느리게, 그러나 책임 있는 정치 주체로 살아보고야 말겠다는 열정을 가져보는 거다. (20)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목표나 계획 같은 건 없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권투 선수 중 한 사람이었던 마크 타이슨은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대개 그럴싸한 기대를 가지고 한 해를 시작하지만, 곧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지는지 깨닫게 된다. 링에 오를 때는 맞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 같은 건 없다. (...) 나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 내가 이런 근심을 누린다는 것은, 이 근심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근심들을 통해서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23)
태어난 이상, 성장할 수밖에 없고, 성장 과정에서 상처는 불가피하다. 제대로 된 성장은 보다 넓은 시야와 거리를 선물하기에, 우리는 상처를 입어도 그 상처를 응시할 수 있게 된다.
상처도 언젠가는 피 흘리기를 그치고 심미적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성장이,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구원의 약속이다. (37)
설거지의 이론과 실천. 칼럼 전체!
설거지의 존재론, 설거지의 윤리학, 설거지의 문명론, 설거지의 인간론. 잘 씻고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지 않으면 역사의 설거짓거리로 전락하게 될 테니까요. 끝으로 가장 중요한 한 마디. 모든 설거지는 이론보다 실천이 중요합니다. (40~42)
결혼생활은 별도의 역량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 역량은 다름 아닌 연민의 능력입니다. (...) 오늘 이후로 신랑 신부는 노화의 과정을 홀로 겪지 않고 배우자와 함께 겪게 될 것입니다. 결혼을 통해 유한한 생물체의 고단함과 외로움과 무기력함을 위로하고 연민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위로와 연민 속에서 비로소 상대에게 너무 심한 일을 하지 않게 되고, 그러한 절제 속에서 인간에게 허락된 행복을 최대한 누리기를 신랑 신부에게 기원합니다. (44~45)
아무리 부부지만 상대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말기 바랍니다. 특히 각자, 상대가 모르는 외로운 전투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 살다 보면 둘 중 한 사람이 어처구니없는 실수나 잘못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바로 그 순간, 제발 정도 이상으로 잔인해지지 말기 바랍니다. (...) 요컨대, 상대를 따뜻하게 대해주는 일상적인 습관이 중요합니다. (47)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피부와 얼굴빛입니다. (...) 피부 관리의 비결은 무엇이냐. 전문가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충분한 영양 공급과 수면입니다. (...) 신랑 신부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여, 가난의 수렁에 빠지지 않는 동시에 좋은 피부를 유지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사람의 얼굴에는 누구에게나 어떤 빛이 깃들게 마련이고, 그 빛이야말로 그 사람의 후천적인 얼굴을 완성합니다. 아름다운 얼굴빛은 (...) 사적인 행복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넓은 ‘공적인 행동’을 추구할 때 깃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본인들이 잠재적인 가난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난 순간부터는 보다 적극적으로 이 사회에 기여할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해보길 권합니다. (49~50)
“기분 좋게 일을 마친 후 한잔의 차를 마신다. 차의 거품에 어여쁜 나의 얼굴이 한없이 무수히 비치어 있구나. 어떻게든, 된다.” (다자이 오사무, 생활)
잘 쉬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쉬기 위해서는 일단 열심히 일해야 한다. (...) 열심히 종사하지 않은 사람의 휴식에는 불안의 기운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쉰다는 것이 긴장의 이완을 동반하는 것이라면, 오직 제대로 긴장해본 사람만이 진정한 이완을 누릴 수 있다. 당겨진 활시위만이 이완될 수 있다. (86~87)
“삶이 진행되는 동안은 삶의 의미를 확정할 수 없기에 죽음은 반드시 필요하다.”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 미래에 우리가 죽음을 앞두고 스스로의 삶을 평가할 때 적용되어야 할 평가 기준은 무엇일까요? (...) 보다 근본적인 평가 기준은, 누가 좋은 인생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115)
위력이 왕성하게 작동할 때는, 인생이라는 극장 위의 배우들이 이처럼 별생각 없이 자기가 맡은 배역을 수행한다. (...) 위력이 왕성하게 작동할 때, 위력은 자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 위력은 그저 작동한다. 가장 잘 작동할 때는 명령할 필요도 없다.
(...) 분노나 폭력이나 강제는 위력이 잘 작동할 때보다는, 위력이 자신의 실패를 절감할 때 나타나는 징후다. (131~132)
이 땅에 희망이 있어서 희망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기에, 희망을 가진다. (156)
인간은 자유와 존엄이 박탈당한 상태에서 태어난다. (...) 이렇게 시작된 삶은, 건조하게 말하여, 부모의 성욕이 원인이 된 외인성外因性 사태다. (...) 모든 이야기들이 결말에 의해 그 의미가 좌우되듯이, 인생의 의미도 죽음의 방식에 의해 의미가 좌우된다. 결말이 어떠하냐에 따라 그동안 진행되어온 사태의 의미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인간은 제대로 죽기 위해서 산다”는 말의 의미다.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 삶은 선택할 수 없지만 죽음은 선택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전적으로 자유와 존엄이 박탈당한 상태에서 시작되지만, 개개인은 자기 삶의 이야기를 조율하여 존엄 어린 하나의 사태로 마무리하고자 노력한다. (174~175)
(2019년 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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