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증적 문제는 특징적인 징후들(특히, 불안과 우울증)을 보이며, 일과 사랑, 그리고 무의식적 충동 환상 생각 기억과 관련된 창의적인 시도들을 억제한다. 신경증적 문제를 겪는 사람들의 고통은 대부분 내면적이다. (...) 성격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특유의 부적응적인 행동방식을 보이는데, 이는 대인관계상의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야기한다. 그런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또한 고통스러운 기분, 목적 달성의 어려움, 그리고 장애가 있는 관계들을 해결하고자 무진 애를 쓰지만, 그것들을 행동으로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들은 고통을 조용히 겪지 못한다. (6)
양가감정이란 우리가 살아가면서 동일한 사람이나 목표, 또는 욕망을 향해 사랑과 미움을 모두 느끼는 감정을 가리키는데,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 어머니가 아이에게 엇갈린 감정을 품는다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놀라운 사실이 아닐 테지만, 양가감정의 부정적인 면이 우리 문화에서, 그리고 특히 이 시대에 얼마나 엄청난 금기를 수반하는지는 정말 놀랍다. (...) 좋은 어머니노릇에 대한 오늘날의 기대치가 너무 감당하기 힘들어지고 그 기준이 너무 엄격해졌으며, 그리하여 어머니의 양가감정이 증가한 동시에 사회적으로도 더욱 수용 불가능해진 것 같다.
나는 양가감정이 본인 스스로에게 불러일으키는 불안과 죄책감으로 인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는 반감으로 인해, 여자들이 지나치게 고통을 겪는다고 느낀다. 양가감정은 건설적일 수도 있고 파괴적일 수도 있는 하나의 현상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즉 양가감정으로 인해 어머니노릇의 어려움과 그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 창의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는 건설적이고, 양가감정이 절망과 아주 다루기 힘든 죄책감, 자기혐오, 그리고 징벌적인 행동들을 이어질 때는 파괴적인 것이다. (11)
인간이 살아가면서 줄곧 양가감정을 느끼는 것이 불가피하고 정상적인 일임을 대담하고 면밀하게 옹호한다. 특히, 어머니의 양가감정이란 어머니와 아이의 서로 다른 필요에서 빚어진 결과라고 본다. 양가감정이 만들어내는 공간에서 아이에 관해 생각할 수 있게 되고, 긴장관계를 해소할 보다 개인적이고 독창적인 방법에 도달할 수 있다. “양가감정의 고통은 생각을 촉진할 수 있다. 그리고 갓난아기와 어린 아이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주장컨대 어머니노릇의 독보적으로 가장 중요한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로지카 파커, 『어머니의 사랑 / 어머니의 미움 : 어머니의 양가감정이 지닌 힘』, 1995) 어머니들이 겪는 진짜 문제는 양가감정 그 자체가 아니라, 양가적인 감정들의 부정적인 면에 대한 폭넓고 대중적인 비난에서 비롯되는 죄책감과 불안이다. (12~13)
정신분석을 지향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의식적인 마음, 그리고 유아기 경험이 전 생애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 프로이트의 획기적인 발견들 이래로 정신분석적 사고의 일반적인 경향은, 향후의 모든 발전이 이루어지는 토대라는 문제에서 오이디푸스 상황의 우선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부터 초기 모자 관계의 중심적인 위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동해왔다. (13~14)
계몽주의 이래로 특히 빅토리아시대에 아동기가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아동기에 대한 가치평가가 이처럼 증대된 것은 핵가족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고 성장 중인 중류층이 교육의 가치를 인정한 것과 병행된 현상이었다. 비록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은 여전히 탄광과 공장에서 일했지만, 특히 산업 혁명 시기의 어린이 노동법과 보편 교육으로 인해 결국에는 그들 또한 구속에서 벗어나 어린이가 되었다. 가족의 중요성이 증대되면서 모자 유대가 이상화되고, 어머니의 보살핌에 대한 기대치가 엄청나게 높아졌다. 이런 이상화는 상류와 중류층 사회에서 가장 두드러졌지만, 노동계층 가정에서도 전혀 볼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자녀양육의 주된 계층 간 차이는 상류층이 자녀보육과 가사노동을 가정부에게 의존한다는 점이었다. 이처럼 다른 누군가가 실질적인 자녀보육의 가장 큰 몫을 감당하고 있다면, 어머니의 모습을 이상화하기가 훨씬 더 쉽게 마련이다.
어머니의 이상화는 현재까지 지속되면서 그 강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오늘날의 어머니들은 더욱 큰 중압감에 직면하는데, (...) 첫째, 가족들이 각자 더 나은 직장과 주택을 찾아 먼 곳으로 옮겨감에 딸, 한 곳에 모여 사는 확대가족이 덜 흔해졌다. (...) 확대가족의 붕괴는 자녀교육의 부담을 온전히 부모에게, 대개는 어머니에게 지운다. 둘째, 핵가족의 와해로 인해(이혼율의 증가, 독신모 출산의 증가 등), 어머니와 아이는 전혀 남의 도움 없이 서로의 복잡한 심리적 필요와 상호작용을 각자 알아서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 일쑤이다. (34~35)
어머니노릇의 여건이 더 어려워짐에 따라 어머니에게 기대되는 것도, 어머니가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것도 더 많아진다. (...) 자녀보육의 모든 영역 – 수유, 수면, 놀이, 정서적 지적 발달 –에서 완벽주이적인 기준이 만연한다. (...) 어쩌면 출산 연기는 상당 부분 이런 양가감정의 표현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 흥미롭게도 아버지의 관점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조금 다르게 전개된다. 아버지의 우려는 가족이 생물학적 사회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일과 더 많이 관련된다. (...) 남자들은 자식을 감정적으로 보살피는 것이 그토록 철두철미하게 자신의 책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우려는 깊고 지독히 골치 아프며, 남자라는 것과 남자다움이라는 것의 핵심을 강타할 수 있지만, 가족의 정서적 안녕은 일반적으로 어머니에게 맡겨진다. 아이들의 정서적 안녕은 특히 어머니의 영역으로 여겨지는데, 아버지는 가족의 성인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지키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여성에게 자동적으로 프로그램되는 것이 아니라, 유전적 진화적 감정적 사회적 요인들이 강력한 호르몬의 영향에 힘입어 자아내는 극도로 복잡한 방정식 (...) (37)
‘양가감정’은 갈등에 빠진 정신 상태, 즉 동일한 사람에게 사랑과 미움의 감정을 모두 느끼는 정신 상태를 지칭한다. 그것은 단지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하나의 감정으로 다른 하나의 감정을 짓밟는 일 없이 여러 경우에 두 가지 감정을 모두 견뎌낼 수 있다면, 정신건강이 좋다는 뜻이다. 사랑이나 미움 가운데 하나를 부인하거나 억눌러야 한다면, 관계가 협소하고 완고해져 다른 사람의 감정적 현실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된다. (39)
미움과 사랑은 감정, 즉 우리가 내면에서 경험하는 상태들이다. 공격성과 다정한 보살핌은 행위, 즉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향해 취하는 행동들이다. (...) 미움은, 사람들의 필요가 심한 갈등을 겪거나 만족되지 않을 때마다 불가피하게 나타나지만, 또한 분리감을 길러줄 수도 있다. 사랑과 나란히 존재하는 한, 미움은 개인의 발전을 용이하게 해 줄 수도 있다. (39)
파커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양가감정이 일으키는 불안과 죄책감으로 인해 우리가 그 창의적인 측면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불안과 죄책감은 문화적 명령과 기대치에서 기인할 뿐만 아니라, 미움이 사랑을 능가하여 짓밟을 것이라는 뿌리 깊은 두려움에서도 기인한다. (40)
엄청나게 다양한 양가감정적 행위들이 근본적으로 무해할 수 있는데, 이는 그 행위들이 결국 사랑에 의해 완화된다는 뜻이다. (40)
불가능한 어머니노릇의 기준을 충족시켜려는 여자들의 시도는 종종 실패하고, 그들은 자신과 아이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느낀다. 그 분노와 실망으로 인해 더욱 큰 죄책감을 느끼고, 더더욱 열심히 노력한다. 이런 순환이 기진맥진하도록 반복된다.
어머니라는 위치가 성취되고 나면, 서로 다른 수준의 자아력과 대상 관계성을 지니고 기능하는 여자들을 바라봄으로써 어머니의 양가감정을 탐구할 수 있다. (...) 자아력이란 자기 자신의 필요에도, 또 자녀의 필요에도 현실적으로 잘 맞추어 기능하는 어머니의 능력을 가리킨다. (...) 대상 관계성은 아이를 어머니의 복제나 연장이 아니라 온전한 별개의 인격체로 대하며 공감하는 능력을 (말한다). 성숙된 대상 관계성을 지닌 어머니는 자녀의 의존성과 독립성을, 자기 자신과 자녀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을 모두 고려할 줄 안다. 또한 자녀를 대할 때 정서적인 유연성과 자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 늘 변함없이 한결같은 사랑을 느낀다는 뜻이 아니라, 아이가 언제 안정감을 요하고 언제 자유와 분리를 요하는지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이다. (44~45)
좋은 어머니란 어떤 것인가? (...) 도널드 위니콧은 ‘충분히 좋은 어머니’라는 문구를 만들어냈는데, (...) ‘보통의 헌신적인 어머니’였다. (...) 완벽하게 전지적으로 자기 아이의 모든 필요를 내다보는 어머니는 아이에게 좌절의 경험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가 겪는 적절한 좌절 – 너무 크지도 않고 너무 작지도 않은 – 은, 생각하고 내적으로 발전하고 다른 사람들의 존재와 필요를 인정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어진다.
(...) 충분히 좋은 어머니의 역할은 (...) 아이에게 안전하고 감싸주는 환경을 제공하는 역할을 제공하는데, 그 환경이란 늘 다정하거나 완벽하게 기쁜 환경을 뜻하지 않는다. (48)
미움을 받는 것은 때때로 분리와 현실에 관한 아이의 의식이 성장하는 데 필수적인 부분이다. 즉 어머니가 아이의 모든 필요를 자동적으로 충족해주지 않을 때, 아이는 자신의 마음과 바람을 더욱 의식하게 된다. 아이는 자신과 어머니가 한 명의 동일 인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59)
사랑하고,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 빠지고, 내․외면적인 현실을 보다 큰 유연성과 감정적인 힘으로 다루는 (달리 말해, 아이의 발전을 인도하면서 자기 자신을 꾸준히 발전시키는) 능력은, 어머니의 밝은 면인 모성애가 베푸는 보상이다. 그것은 비非양가감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좋고 보람된 순간에는 즐겁고 고무적인 상태이며, 보다 어두운 순간에는 생각과 타협, 성장의 기회가 된다. (77)
6장 내면화된 양가감정과 숨겨진 죄책감의 위험들
모든 아이들은 부모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이 과정은 의식적인 요소와 무의식적인 요소를 모두 지닌다. 아이들은 부모의 세계관과 가치관, 생각들, 심지어 움직이고 말하고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까지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이는 동일시의 의식적인 부분이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는 부모의 불안과 감정, 갈등을 익히게 되는데, 바로 이 동일시의 무의식적인 차원 때문에 많은 여자들이 아이를 낳고 어머니가 되면 자신의 어머니를 그대로 따라하게 되는 것이다. (105)
세대에 따라 변화하는 듯 보이는 ‘올바른’ 자녀양육의 관행은 그 자체가 일종의 폭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어머니들은 옳은 방식을 따르고 싶어 하며, 그리하여 종종 어머니의 직관을 거스르는 행위도 마다지 않는다. (...) 그러나 자연적이라고 느껴지지 않거나 불안을 야기하는 어떤 일을 함으로 인해 뒤따르는 불편함은 유아나 어린 아이에게 긴장감으로 전달될 수 있다. (155~156)
확대가족의 도움 없이도 모두 다 해내고자 하는 것, 즉 일도 하고, 아이들도 ‘제대로’ 키우고, 남편과 친밀한 관계도 지속하고, 취미와 사회생활, 운동 일정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요즘 시대의 어머니들이 일반적으로 품고 있는 기대치이다. 양가감정은 오직 그런 목표들이 야기하는 기력 소진과 불가피한 실패에 의해 악화될 수 있을 뿐이다. (165)
7장 양가감정의 외면화
그들은 자신들의 성나고 언짢은 감정을 아이의 잘못으로 여기면서 죄책감과 분노를 느끼며 (...) 그런 감정을 공격적인 행동으로 표출하고, 자신들의 내적인 문제가 아이들에게서 비롯된다고 여긴다. 이런 여자들의 경우, 괴물 같은 아이들은,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어머니의 투사이다. (174)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들을 탓함으로써 심리적인 평정을 유지하고, 어머니노릇의 문제들을 이야기하는 데 두려움을 느낀다. 또한 아이들을 자신과 분리된 존재로, 즉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을 지닌 존재로 바라보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따라서 아이의 행동을 아이의 특유한 대처방법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지 못한다. (176)
우리가 어머니의 양가감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이면에는 어머니에 관한 어떤 끈질긴 확신이 깔려 있는데, 즉 ‘올바른 어머니’를 가진 아이들은 모두 사랑스러울 수 있고, 여자라면 누구나 ‘올바른 아이’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상황들도 있다는 현실은 마주하기 두렵다. (177~178)
증오는 종종 실연의 결과이며, 인간의 애착관계, 특히 어머니와 아이 사이의 애착관계가 지닌 본성상, 그 어떤 것이라도 전적인 무관심보다는 낫다. (207~208)
8장 두려움이 현실로 변할 때
여자들이 증오 – 그들의 양가감정이 지니는 어두운 면 –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실질적인 이유는 사회가 아이들을 이상화하고 보호하는 데 있다. 동시에 까다로운 아이를 키우는 부다은 주로 어머니에게 맡겨진다. (225)
10장 뱀파이어형 어머니노릇 – 무대 엄마들에서 침해적인 엄마들까지
뱀파이어형 어머니노릇(..)의 극단적인 형태들은 어머니의 양가감정 가운데 가장 파괴적이다. 나는 이런 종류의 어머니노릇을, 서로 갈래가 다르지만 자주 겹치는 두 가지 특징으로 개념화한다. 그 첫 번째는 어머니가 다른 방식으로 얻을 수 없는 만족을 얻는, 아이에게서 받는 영양 공급니다. 그 온건한 형태는 너무나 열성적인 어머니 – 무대 엄마나 사커맘 soccer mom(전형적인 중산층 엄마를 가리킨다) - 인데 그런 어머니의 자기애적 필요는 아이의 성취와 어머니를 향한 아이의 애착에 몹시 의존하며, 그래서 아이에 대한 사랑은 늘 어머니가 이런 종류의 영양 공급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주어지는 편이다. 두 번째이자 더욱 불길한 형태를 띠는 어머니의 뱀파이어 행위는 아이에게 ‘양식糧食’-생각과 행동, 충성, 그리고 믿음, 특히 인간관계의 본성에 관한 믿음 따위의 양식-을 강제로 주입하여 아이의 자율성을 완전히 통제하고, 창의적인 노력을 좌절시키고, 피해망상적인 세계관으로 이끄는 것이다. 이는 아이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와 현실감이 묵살되는 감정적인 학대의 수준으로 이어질 수 있다. (...) 는 그런 행동을 잘못되거나 비공감적인 부모노릇이라기보다 ‘뱀파이어형’ 부모노릇이라고 부르는데, 그 부모는 그야말로 아이를 통해 심리적으로 생존해야 하기 때문이다.(261~262)
11장 어머니의 가장 어두운 면 – 자녀 살해
낙태란 아기를 살해하는 짓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원치 않은 출산으로 야기된 양가감정이 훨씬 더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323)
13장 어머니가 해야 할 일
어머니의 필요와 유아의 필요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은 어머니의 양가감정이 솟아나는 주요 원천이다. 그리고 이런 불안과 죄책감은 보상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지는데, 가뜩이나 유아의 보다 시급한 필요 때문에 침해되고 있는 어머니의 합당한 필요는, 그런 노력으로 인해 더더욱 충족을 방해받는다. 이는 악순환으로 보이며, 분명 필요 이상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353)
우리는 어머니들이 엄청난 압박에 직면한다는 점과 그들이 자식에게 느끼는 폭넓은 감정이 정상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어머니노릇의 방식이 아주 다양하며, 모든 모자 관계가 각기 고유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아울러 사회적이고 유연한 존재인 인간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유행을 따르지만, 유행을 향한 열정이 자녀양육의 관행을 상식 밖으로 침해할 경우에는 크나큰 불행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354)
양가감정의 생성 및 완화 모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일하고 싶거나 그래야 할, 또는 아이들과 떨어져서 즐겁고 창의적인 활동에 참여하고 싶거나 그래야 할 어머니의 바람 / 필요이다. (...) 어머니는 자신의 필요와 아이들의 필요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직면한다. (360)
(2019년 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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