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의 문장이 불러온 내 이야기
자기 존재가 집중받고 주목받은 사람은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을 확보한다. 그 안정감 속에서야 비로소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하다. (45~46)
- 살아오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숙제들을 많이 만났다. 그 때마다 정면 대결 전략을 택했다. 거부하거나 외면하려 해도 그 문제들이 나를 붙잡아 괴롭힌다면 그건 싸워서 이겨야할 문제이고, 넘어서야할 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비롯된 문제인지 파악하고 현재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찾아헤맸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했고 기운이 빠질 때쯤 내가 해낸 일을 확인해보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내가 해내지 못한 일을 두고 자책하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못하지만, 나중의 나는 해낼 수도 있을 거라 믿었다. 무엇보다 세상에는 내가 해결해낼 수 없다는 일이 무수히 많다는 것,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곤경을 겪고 있을 거라는 깨달음도 나를 자유롭게 했다. 이대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최선을 다한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다독였다. 그러고나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었을까? 내 생각과 행동의 근원이 뭘까?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 특히 아빠에게 '똑똑하고 책임감 강한 딸'이라는 자부심을 주는 존재였다. 아빠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수학 쪽지시험에서 100점을 받거나 숙제를 혼자 알아서 하는 것. 할아버지, 할머니 심부름을 잘 하거나 동네 어른들을 만나면 웃으면서 인사하는 것. 등등. 지금 생각하면 정말 단순한 것들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저 순하고 착하고 소심한 아이일 뿐이었다. 그 아이에게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고생스럽게 일하고, 자신을 위해서는 10원 한 푼 쓰지 않는 아빠가 안스러워보였을 뿐이다. 계속 이어지는 노동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에 아빠의 얼굴은 피로하거나 굳어있었다. 100점짜리 쪽지시험지를 받을 때마다 쏜살같이 아빠에게 달려간 건 아빠의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물론 아빠가 손에 쥐어준 100원짜리로 설탕에 케찹까지 뿌린 핫도그가 맛있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칭찬과 함께 주는 용돈은 사라졌지만 나는 시험지를 받거나 통지표를 받을 때는 아빠에게 달려갔다.
나의 성취에 함께 기뻐하고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응원해준 아빠. 아빠의 울타리 속에서 나는 편안하게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2. 밑줄 그은 문장 - 짧은 생각
감정은 존재의 핵심이다. (57)
- 이성이 아니다. 우리는 얼마나 감정을 함부로 다루는가?
슬픔이나 무기력, 외로움 같은 감정도 날씨와 비슷하다. 감정은 병의 증상이 아니라 내 삶이나 존재의 내면을 알려주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86)
- 부정적인 감정을 빨리 떨쳐내려 몸부림치지 말자. 떨쳐내려고 해도 떨쳐지지도 않고 그건 내 존재가 지르는 하소연이나 비명일수도 있으니.
감정이 항상 옳다. (...) 나의 안녕에 대한 판단은 거기에 준해서 할 때 정확하다. (103)
- 감정을 살펴보면서 나를 점검해보자.
내 상처의 내용보다 내 상처에 대한 내 태도와 느낌이 내 존재의 이야기다. (105)
- 이렇게 생각하면 상처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겠다. 살아가면서 상처받는 건 불가피하다. 그러나 상처에 대한 내 태도와 느낌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나의 존재의 이야기를 써나가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누군가 고통과 상처, 갈등을 이야기할 때는 ‘충고나 조언, 평가나 판단(충조평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대화가 시작된다. 충조평판은 고통에 빠진 사람의 상황에서 고통은 소거하고 상황만 인식할 때 나오는 말이다. 고통 속 상황에서 고통을 소거하면 그 상황에 대한 팩트 대부분이 유실된다. 그건 이미 팩트가 아니다. (106)
- 충조평판 금지. 명심 또 명심.
공감은 상대를 공감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깊은 감정도 함께 자극되는 일이다. 상대에게 공감하다가 예기치 않게 지난 시절의 내 상처를 마주하는 기회를 만나는 과정이다. 이렇듯 상대에게 공감하는 도중에 내 존재의 한 조각이 자극받으면 상대에게 공감하는 일보다 내 상처에 먼저 집중하고 주목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따스하게 물어줘야 한다.
언제나 나를 놓쳐선 안 된다. 언제나 내가 먼저다. 그게 공감의 중요한 성공 비결이다. (...) 너를 공감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이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공감하는 일이다. (...) 상대에게 더 집중하려고 자기 감정은 누르고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감정 노동에 시달리다가 결국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다. (...) 너를 공감하다 보면 내 상처가 드러나서 아프기도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나도 공감받고 나도 치유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공감하는 사람이 받게 되는 특별한 선물이다. (120~121)
- 감정노동과 공감을 헷갈리지 말자. 내 상처에 먼저 집중하고 주목하자. 나에게 공감을 잘 하는 사람이 타인에게도 공감할 수 있다. 타인에게 공감하는 일이 나에게 공감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공감이 주는 선물을 누려볼까?
감정적 반응 그 자체가 공감은 아니다. 한 존재가 또다른 존재가 처한 상황과 상처에 대해 알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 존재 자체에 대해 갖게 되는 통합적 정서와 사려 깊은 이해의 어울림이 공감이다. 그러므로 공감은 타고난 감각이나 능력이 아니다. 학습이 필요한 일이다.
공감이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으로 나눈다면 그 비율이 2:8 정도로, 공감이란 것은 인지적 노력이 필수적인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124)
- 공감이 타고난 감각이나 능력이 아니라 학습으로 가능하다는 것. 기억하자.
3. 그러고도 밑줄 그은 문장들
사람의 내면을 한 조각, 한 조각 보다가 점차로 그 마음의 전체 모습이 보이면서 도달하는 깊은 이해의 단계가 공감이다. (125)
잘 모르면 우선 찬찬히 물어야 한다.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시작되는 과정이 공감이다. (127)
공감은 그저 들어주는 것,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듣는 일이다. 정확하게라는 말은 대화의 과녁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뜻이다. 공감에는 과녁이 있다. (...) 공감적 대화의 과녁은 언제나 ‘존재 자체’다. (...) 과녁을 정확하게 한 질문이나 시선은 한 존재 자체를 그런 식으로 조금씩 흔든다. 성찰하게 한다. 마음을 열게 만든다. 과녁에 정확하게 닿은 공감적 대화의 힘이다. (132~136)
공감은 (...) 외형적 변화에 대한 인정이나 언급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한 그 사람 자체, 그의 애쓴 시간이나 마음씀에 대한 반응이다. (142)
내 공감을 포갤 곳은 그의 생각과 행동이 아니라 그의 마음, 즉 감정이다. 존재의 느낌이나 감정이 공감 과녁의 마지막 중심점이다. (161)
때로 관계를 끊는 힘도 필요하다 - 성인 간의 관계는 다르다.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지만 나만 잘한다고 되지 않는다. 상대가 감당해야 할 몫도 있다. 그것까지 내가 짊어질 이유는 없다.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 어떤 관계에서든 납득할 수 없는 심리적 갑을 관계가 일방적이고 극단적으로 계속된다면 이런 관계를 끊을 수 있는 것이 더 건강하다. 우선 내 건강성을 지켜야만 나중을 기약할 수도 있다. (171)
(2019년 3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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