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부터 2002년까지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이 나눈 편지 모음집. 뒷부분에는 이오덕 선생님이 투병 중에 쓰신 시 두 편과, 권정생 선생님이 이오덕 선생님을 기리며 쓴 글, 그리고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권정생 선생님의 멋진 유서가 실려 있다.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의 나이차는 열두 살. 띠 동갑인 두 사람이 서로의 건강과 생활을 염려하며 주변 사람과 문학에 대한 생각과 근심, 애정을 나누는 풍경이 애잔하고 따뜻하게 펼쳐진다.
1973년 1월 겨울날 이오덕 선생님이 권정생 선생님이 혼자 살고 있는 일직교회 문간방으로 찾아가면서 시작된 만남은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산 넘고 먼지 나는 길을 걸어 버스 타고 기차 타고 권정생 선생님의 원고를 책으로 엮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분투하는 이오덕 선생님의 모습이 보인다.
앉지도 눕지도 잠들지도 못하는 고통 속에서도,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담은 작품을 쓰시는 권정생 선생님이 느껴진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동화와 동시에 두 선생님의 피와 땀과 눈물이 진하게 배어있다는 것, 내가 누리는 삶의 풍요로움이 누군가의 수고와 희생에 빚지고 있다는 것을 자주 잊어버린다. 부끄럽다.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이 나란히 걸터앉아 같은 곳을 바라보거나,
이제는 고통 없는 곳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계실 두 분을 떠올리게 하는 김효은 작가의 삽화도 따뜻하다.
다음은 왜 '슬픈 동화'만 쓰냐는 사람들의 말에 대한 권정생 선생님의 답변.
"어쨌든 저는 앞으로도 슬픈 동화만 쓰겠습니다. 눈물이 없다면 이 세상 살아갈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산다는 것은 눈물투성입니다. 인간은 한순간도 죄짓지 않고는 목숨이 유지되지 않는데, 어떻게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겠습니까? 내가 한 번 웃었을 때, 내 주위의 수많은 목숨이 희생당하고 있었고, 내가 한 번 만족했을 때, 주위의 사물이 뒤틀려 버리고 말았던 것을 어떻게 지나쳐 버릴 수 있겠습니까? 수만 번 되뇌어도 역시 인간은 죄 뭉치에 불과합니다. 이런 죄 덩어리를 어디다 사죄받을 곳이 있겠습니까? 하느님께 용서받는다는 것도 죄입니다. 결국 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는 것도 가증할지 모르지만 울 수도 없다면 죽어야지요. (311)
그리고 권정생 선생님의 유서 중 일부.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게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 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랍니다.
(...)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스물다섯 살 때 스물두 살이나 스물세 살 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0일, 쓴 사람 권정생)" (370~371)
(2019년 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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