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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풀어놓기/예전에...

봉구

by 맑은 물 2019. 1. 30.

봉구

 

박박. 봉구가 안방문을 긁는 소리가 들린다. 예전에 내가 일어나면 쫄랑대며 따라 나왔던 봉구는 요즘에는 내가 일어나도 가만 엎드려서 눈동자만 데굴대고 꼬리만 잠시 흔들다 그대로 눈을 감기 일쑤여서 안방문을 닫아놨었다. 살짝 안방문을 여니 문 앞에 서 있던 봉구가 꼬리를 흔들며 내게 온다. 앞다리를 바닥에 뻗고 엎드려 허리를 최대한 늘이고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들며 몸을 풀고는 고개를 양쪽으로 빠르게 털면서 몸서리친다.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부드럽게 곱슬거리는 털이 손바닥을 간질인다. 바닥에 앉은 내 다리 위에 배를 깔고 몸을 동그랗게 말아 엎드린다. 자판을 치기 시작하자 슬그머니 일어서더니 큰 원을 그리며 내 주위를 돌더니 다시 안방으로 들어간다. 아직 더 자고 싶은가 보다.

봉구는 올해 세 살이 된 연갈색의 작은 푸들. 우리 집에 온 지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는데 십년은 함께 산 느낌이다. 품에 앉고 있으면 따뜻하다. “봉구야!” 나지막이 부르면 가만히 나를 쳐다보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5도 정도 갸웃거린다. 마치 내가 할 말을 알아듣고 최대한 경청하려는 듯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람이 방에서 바쁘게 걸어 나온다. 내가 서 있으면 팔짝팔짝 뛰어오르고 내가 앉으면 배를 내 보이며 눕는다. 배를 쓰다듬어 주면 네 다리를 하늘로 치켜들고 가르릉 거린다.

처음에는 봉구가 다가오면 당황해서 빨개진 얼굴로 도망치던 가람이도, 이제는 학원에 다녀오자마자 봉구야, 형이랑 산책가자!”하면서 봉구를 안고 가슴 줄을 채운다. “엄마, 봉구가 왜 이렇게 귀여워?”를 반복하고, 잠 잘 때는 봉구를 안고 잔다. 때로 고추를 꼬집거나 뽀뽀한다며 목을 조이고 배를 꽉 끌어안아 네 다리가 덜렁대는 불편한 자세로 봉구를 안고 돌아다니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으르렁대거나 꽝꽝 짖어대면서도 가람이가 매일 산책을 시켜줘서인지 봉구야, 형아 좀 재워주고 와.”하며 가람이 옆에 눕혀 놓으면 가만히 누워 있다 아이가 잠들면 안방으로 온다.

성격이 명랑하고 잘 웃는 강아지라며 지인에게서 봉구를 입양해 온 남편은 퇴근하자마자 봉구를 끌어안고 냄새를 맡는다. 봉구에게 좋은 냄새가 난다나. 피곤에 절어 늦은 밤에 들어와도 봉구가 산책을 못했다 하면 밤 산책을 데리고 나간다. 봉구의 물통을 매일 닦아주고 밥그릇을 채워주고 배변 패드를 갈아주는 건 남편의 몫이다. 아빠의 마음이 봉구에게 전해지는지 번역을 하고 논문을 치는 남편의 발밑에는 항상 봉구가 엎드려 있다.

자다 깨보면 봉구가 남편과 내 사이에 가로로 길게 누워 자고 있을 때가 있다. 침대 양옆으로 밀려나 가장자리에 11자로 누운 남편과 나는 낄낄거린다. 잠시 살짝 고개를 들어 우리를 바라보다 다시 침대에 고개를 내려놓고 눈을 감는 봉구. 우리가 어쩌다 반려견과 잠자리를 함께 하게 됐을까? 온몸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봉구 덕분에 우리 집이 좀 더 따뜻해진 느낌이다.

고맙다, 봉구야.”

 

(201839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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