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 일하다 죽는 사회에 맞서는 직업병 추적기』
강동묵 외 / 나름북스 / 2018
12월 아침, 문재인 대통령에게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나자는 손팻말을 들고 있던 앳된 얼굴의 청년 노동자의 얼굴을 보았다. 그 절실한 눈빛이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시커먼 어둠과 석탄 연기에 묻혀 방치되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눈물을 쏟았다. 그의 얼굴에서 내 아들의 얼굴이 보였고, 내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이 보였다. 손팻말을 든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던가. 그 죽음 이후로 수시로 그의 사진을 들여다보게 된다. 어떻게 해야 이런 참담한 소식을 듣지 않게 될까?
답답한 마음에 책을 펼쳐들었다.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의대에 '직업환경의학과'라는 전공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일터에서 얻은 직업병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을 위해 일하는 의사들이 우리 사회에 있었다는 걸 알고 얼마나 감사했던지. 진폐증으로 고생하는 석공과 광부들,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어린 노동자, 화학약품으로 노트북 컴퓨터를 선 채로 12시간 동안 닦다가 하반신이 마비되어 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앉은뱅이병'에 걸린 태국 출신 노동자들, 휴대폰을 닦다가 시력을 잃은 하청의 하청 공장 노동자들까지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을 접한다. 목숨을 담보로 한 노동이 가난한 자들, 가난한 나라로, 마치 자연법칙처럼 흘러가는 모습을 목격한다. 19세기 부르주아 가정의 아이가 굴뚝을 통해 들어와 선물을 전해주는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며 설렐 때, 노동계급 가정의 아이들은 굴뚝 속에 들어가 청소를 했단다. 7~8살 때부터 고용되어 16시간씩 온몸에 석탄 검댕이를 묻혀 일하고, 밤에도 석탄을 받아낸 담요를 덮고 잔다. 화상을 입고 질식사하고, 석탄 검댕의 발암물질에 노출되어 '검댕암'에 걸려 죽는다. 자본주의의 시작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난한 사람들은 죽음의 일터로 내몰린다.
가난한 자들의 일터로 들어가 '그들의 질병을 번역하는 수고로운 번역가'를 자처하는 의사들의 존재가, 그들과 함께 죽음의 일터를 관찰하고 감시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간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중대재해로 노동자를 죽이는 기업을 강력히 처벌해야한다는 취지로 발의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 이번에는 꼭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9년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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